[책] 밸러리 영 /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
부제 : 성공을 소유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가면 증후군 탐구
취업준비생 시절을 떠올려보면, 일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내가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이란 걸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 회사들이 멍청이라고. 그런데 막상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처음이라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점점 더 일을 알아가고 연차가 쌓여 갈수록 그런 마음이 심해졌다.
주변의 피드백과 성과를 나열해보면 객관적으로 일을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스스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늘 괴로웠다. 내가 성취한 것은 다른 누구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게는 없고 다른 사람에게만 있는 요소는 치명적인 부족함으로 느껴졌다. ‘동료가 복지다’라고 말할 만큼 능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은 행운이었지만 그들에게도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일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업무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소극적인 태도가 됐다. 팀원들과 점심을 같이 먹지 못하겠어서 혼밥을 한 것도 여러 날이었다.
이런 생각들을 자주 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처럼 잘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실력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게 아니야. 나보다 훨씬 더 잘 맞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운좋게 자리를 차지했어’
‘그때는 다들 바빠서 나에게까지 기회가 돌아온 거야.’
‘그분이 거의 다 도와주셔서 일이 수월하게 흘러갔던 거지. 나 혼자였으면 힘들었을걸?’
‘세상에, 팀에 막내가 들어온다고? 지금까지는 내가 막내라 뭐든 잘해 보였겠지만 이제는 내 진짜 실력이 뽀록나고 말 거야’
좋아하는 선배들과 동료들에게 이런 고민을 말하면 잘하고 있는데 괜한 걱정이라고, 다른 회사에서는 훨씬 더 높은 직급의 사람이 맡아서 할 일을 네가 하고 있다고, 왜 스스로를 의심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말들은 고마웠고 그런 말들에 힘입어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떨쳐내려 애썼지만 대체로는 믿어지지 않았고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그런가? 내가 사실은 좀 괜찮게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 때면 칭찬과 격려를 받기 위해 괜히 겸손한 척 모자란 척 한 것 같다는 마음에 괴로웠다.
작년 말쯤 이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여자는 왜 자신의 성공을 우연이라 말할까』. 이런 제목의 책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홀린 듯이 책을 빌렸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 위안이 되었고, 내가 실제로는 형편없는 사람인데 사람들에게는 괜찮게 보이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운 감정의 이름은 ‘가면 감정’이라는 것을, 이런 감정들은 왜 생기고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를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긴긴 발췌이다.
자신의 성공이 타이밍, 운, 또는 전산상의 실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할 수 있다면 누구든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가?
업무상의 아주 사소한 실수에도 괴로워하는가?
건설적인 비판마저 내 부족함의 증거라고 여겨 절망에 빠지는가?
어떤 일에 성공하면 이번에도 사람들을 잘 속여 넘겼다고 생각하는가?
진짜 실력이 들통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걱정하는가? 23p. 가면 증후군 클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당신의 가족, 친구, 가까운 동료들은 스스로를 의심하는 당신을 향해 ‘별것 아닌 일에 걱정한다’며 콧방귀를 뀌거나, 당신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알려주며 안심시키려 하지만 끝없이 부인하는 당신에게 인내심을 잃고 짜증을 낼 것이다.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매번 삼진아웃을 걱정하다가 홈런을 치는 일이 반복된다면, 아무리 든든한 지원군도 결국은 당신에게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36-37p.
- 당신이 그 자리에 있는 건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62p.
-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노력 안 하기 증후군’이라고 부르는데, (중략) 여기서 작동하는 무의식적 사고는 ‘실패할 거라면 멍청해서가 아니라 게을러서 실패한 걸로 보이는 게 낫다’라는 것이다. (중략) 당신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수록 자신이 취약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중략)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노출시켰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바에야 노력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덜 고통스럽다. 99p.
- 실패하고 나면 미루기는 핑곗거리가 된다. ‘실망스럽긴 하지만 별로 놀랍진 않아. 마지막 순간에 급하게 쓴 거잖아.’ 하지만 반전이 있다. 인턴으로 뽑혔더라도 그것을 합당한 결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지원서에는 최대한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질적으로 일을 미루는 사람들에게 성공은 이번에도 사람들을 속여 넘겼다는 믿음을 강화할 뿐이다. 103-104p.
- 만약 일을 미루고 있다거나 중요한 일을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다면 마음을 다잡고 마감 날짜를 정하자. (중략) 하루를 온전히 쏟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자. 117p.
- 누구든 운이 좋을 수 있다. 차이를 만드는 건 그 행운으로 무엇을 하느냐다. 빌 게이츠의 동기들도 이 초기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127p.
- 인맥이 좋은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 나갈 가능성이 높다. (중략) 하지만 어떤 기관, 어떤 추천자, 어떤 고용주도 당신에게 그 일을 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명성이나 원칙에 금이 갈 일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었을 수는 있지만 일단 안에 들어가서 기대에 부응하는지 부응하지 못하는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129-130p.
- 당신은 모든 걸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누가 알고 있는지를 찾아내서 거기서부터 일을 풀어나갈 만큼만 똑똑하면 된다. 161p.
- 한발 더 나아가 비판적인 피드백을 일종의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떨까? (중략) 당신에게 비판을 활용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중요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피드백을 주지도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193p.
- 될 때까지 되는 척하라. 255p.
- 실수를 감추기는커녕 정반대로 필요 이상의 정보를 자진해서 내준 적은 없는가? (중략) 불필요한 자백을 멈추자. 277
안다고 해서 가면 감정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을 테다. 안전하지 못한 상황, 도전적인 상황, 불신 혹은 기대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고 다시 활약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혀왔던 감정의 정체를 함께 풀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 적어도 그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는 것이 눈물겹게 기쁘다. 이 책을 읽으며 조금쯤이나마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을 인정해줄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앞으로도 내 마음을 지켜낼 튼튼한 방패로 사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